일본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인사건
2008년 6월 8일 일본 도쿄 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
아키하바라는 일요일 오후시간대로, 보행자 천국이라는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었다. 보행자 천국이란 차량을 통제함으로써 보행자만이 도로를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이벤트였다. 아키하바라는 애니메이션, 피규어, 비디오 게임 등 여러가지 가게들이 있는 일명 '오타쿠의 성지'였다. 당시 거리에는 메이드 복장으로 아르바이트 중인 여성이나 휴대폰 가판대 아르바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다니며 관광 및 쇼핑을 즐기고 있었다. 차량은 한대도 없었기 때문에 거리는 광범위 했다. 수많은 인파들로 우글거리고 아이의 때쓰는 소리, 종종 들려오는 비명소리 등 아키하바라는 하루종일 씨끌벅적했다.
오후 12시 35분경
츄오토리에 2톤 트럭이 빨간불 신호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신호를 무시하고 갑자기 돌진했다. 트럭은 횡단보도로 돌진하면서 그대로 5명의 보행자를 들이받았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육중한 트럭의 타이어에 깔린 사람들 대부분이 신체 일부가 보기 흉측할 정도로 함몰되어 있었다. 검붉은 색이 섞인 피가 아스팔트 도로 위를 붉게 물들였다.
이후 이 트럭을 운전하던 남성은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로 돌진해 부추돌한 후 차에서 내렸다. 처음엔 사람들은 단순히 교통사고라고 생각하며 트럭에 치인 사람들을 구하려 온 경찰관이나 행인들이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차에서 내린 남성은 미리 준비한 나이프를 빼어들고는 괴이한 소리를 질러대며 보이는 사람마다 찌른 후 도주했다.
범인은 도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출동한 경찰에 의해 붙잡혔다. 불과 10여 분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붙잡힌 범인은 25세의 아오모리현 출신 청년 '카토 토모히로'였다. 기후현에서 단기대학을 졸업한 후 경비원, 자동차 공장과 주택자재 회사의 비정규직 직원에 트럭 운전기사 등을 전전하던 사람이었다.
카토 토모히로
카토는 높은 교육열을 가진 엄격한 부모 밑에서 자라났다. 동네 주민들에 증언에 따르면 카토는 야단을 맞고 밖으로 쫓겨나기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어쨌든 카토는 그 탓인지 중학교까지는 우수한 학업성적을 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부터 성적이 나빠져 전문대로 진학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는 이 시점에서부터 정신적으로 비뚤어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카토는 사교성이 부족하여 말수도 적고 다른 사람과의 교류도 적은 편이었다고 한다. 이성에게 인기가 없어 범죄에 이르렀다는 추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카토가 범행 이들 전인 6일, 상점에서 칼을 구입하면서 CCTV에 찍힌 모습에는 '젊은 여성'인 점원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확인되었다. 이성과의 교류에도 목이 말랐을지도 모른다.
사건 당시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등산용 나이프 외 5개의 나이프를 더 소지하고 있었다. 나이프들은 사건 이들 전 밀리터리 잡화점에서 구입한 서바이벌 나이프나 군용 나이프로 밝혀졌고, 사건의 구상은 2005년 센다이에서 일어난 트럭 폭주 사건과 2008년 츠치우라 연속 살상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피살자 명단
1. 나카무라 가쓰히코 (당시 74세, 전직 의사)
2. 고이와 가즈히로 (당시 47세, 회사원)
3. 마쓰이 미쓰루 (당시 33세, 요리사)
4. 미야모토 나오키 (당시 31세, 회사원)
5. 무토 마이 (당시 21세, 대학생)
6. 후지노 가즈노리 (당시 19세, 대학생)
7. 가와구치 다카히로 (당시 19세, 대학생)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8시 경, 카토 토모히로는 누마즈의 렌터카업체에서 2톤 트럭을 빌려 이를 몰고 도쿄로 향했다. 12시 15분경, 카토는 아키하바라 아키바에 도착하여, 차량의 통행이 통제된 도로로 그대로 차를 몰았고, 행인 몇 명을 치고 정차한 뒤, 차에서 내려 고함을 지르며 무차별적으로 서바이벌 나이프를 휘둘러도합 7명을 죽이고 10명을 다치게 했다.
사상자 17명 중 나카무라, 후지노, 카와구치와 부상자 2명은 차에 치였고, 코이와, 미야모토, 마쓰이 무토와 부상자 8명은 칼에 찔렸다. 이들 중 마야모토를 위시한 일부는 칼에 찔린 뒤 달아났는데, 카토는 달아나는 사람을 쫓아가서 살상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중 사망자중 한명인 '무토 마이'는 휴대폰 가판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트럭에 치인 보행자를 도와주기 위해 뛰어가다 범인의 칼에 찔려 숨졌다. 그녀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그녀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매우 착하고 성실한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다친 보행자를 도와주기 전 잠깐이라도 망설였더라면 그녀는 이러한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 카토는 새벽 일어나서부터 범행 약 20여 분 전까지 스스로의 이동상황, 심리상태 등을 휴대전화를 통해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2ch에 범죄 예고글을 올리는 등 매우 담담하게 행동했다. 범인이 작성한 쓰레드와 관련된 2ch 쓰레드는 대부분 삭제됐지만, 그 당시 다른 2ch 유저들이 낚시하지 마라', '할 용기도 없으면서',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식으로 자극했다고 한다.
사건 이후와 피의자 판결
12시36분 최초로 신고를 받은 도쿄 소방청은 일반적인 교통사고로 보고 구급대와 소방차를 각각 1대씩 출동시켰다. 이후 신고가 잇따르자 지휘대 1대와 구급대 4대를 더 출동시켰다. 12시 43분에 최초 구급대가 도착했지만, 통상적인 대처로는 무리라고 판단, 재해파견 의료팀(DMAT)를 출동시켜 구조를 진행시켰다. 이 사건은 무차별적으로 많은 희생자를 낳게 되어 일본 역대 최악의 참사라고 불릴 만큼, 일본사회를 충격속으로 몰아 넣었다. 사건 당시 시행중이던 보행자 천국은 그 뒤로 무기한 중지되었으나, 보안과 경비인력을 대폭 강화하여 다시 재개되었다.
카토 토모히로에 대한 재판은 2010년 1월 8일에 열렸다. 재판과정이 길고 긴 걸로 유명한 일본 법정의 관계로 본다면, 최종심리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였다. 당시 이 공판에서 카토는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그리고 201년 3월 24일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피고가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으로 미뤄 보면 상고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지만, 결국 항소해 2심 재판이 이어졌다. 변호인은 심신미약을 주장했으나 2012년 9월 12일, 도쿄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죄질이 너무 나쁘다는 이유로 사형을 판결했다. 9월 25일 최고재판소에 상고한 상태이며 확실한 확정판결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출처 : 짱공유 미스테리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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