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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소리 없는 아우성, 상가 간판들

중앙일보 2006.08.02


부분에 몰두하다 전체 맥락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공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하나 요소가 훌륭해도 전체 구성이 조화롭지 않으면 디자인은 실패입니다.

올해 초 국회 공공디자인 문화포럼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무엇이 가장 심하게 도시경관을 해치는가'. 가장 많은 답변은 '간판'이었습니다. 도시경관의 큰 면적을 수많은 간판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마다 다른 색채와 형태를 강조한 공격적인 간판들. 보고 있노라면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느낌이 듭니다. 어느 것 하나에도 시선을 집중할 수 없는 혼란입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점포만 강조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도시에서 대형 간판이 주류를 이루는 이유는 큰 간판과 큰 글자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된다는,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진 오른쪽은 일본의 어느 전자상가입니다. 각 브랜드의 고유 서체를 입체형으로 만든 간판들이 건물과 조화를 이룹니다. 현란한 색채도 없고 특이한 디자인 기법도 없습니다. 하지만 건물의 입면(立面)을 사이좋게 공유해 전체를 배경 삼아 쉽게 읽힙니다. 왼쪽의 우리 전자상가는 창을 제외한 건축 벽면에 형형색색의 간판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어느 것도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모든 간판이 시각적으로 서로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쾌적한 도시환경, 잘 읽히는 아름다운 간판을 만들려면 공공의 공간을 함께 일궈 가는 상호 존중과 조정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권영걸 서울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