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0.13 한겨레 칼럼 [왜냐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요즘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 세대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남미)을 발견했다고 교과서를 통해 의심의 여지 없이 배웠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다룬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라는 책을 쓰면서, 남미라는 지역을 더 내재적 관점에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콜럼버스가 소위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것을 했을 때, 남미에는 이미 수천만 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발견’이라는 말이 적절할까? ‘신대륙의 발견’이라는 단어는 남미 지역에 이미 살던 수천만 명의 사람들을 졸지에 ‘김춘수의 꽃’으로 만들었다. 콜럼버스가, 그리고 스페인과 서양이 이름을 불러줘야만 의미가 있는 존재들. 만약 콜럼버스가 남미가 아닌 조선에 왔다면 조선이 ‘발견’되는가? ‘발견’, 이 얼마나 오만한 단어인가. 사실은 두 문명의 만남일 뿐인 사건에 ‘발견’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사람이 아닌 존재로 취급당했다.
위인이 된 학살자
수천만 명에 이르던 사람(선주민)의 수가 2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사에 다시 없을 천인공노할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산 채로 사람을 굽고 임신부의 배를 갈라 태아를 꺼내 죽이는 짓거리들이 백주 대낮에 태연자약하게 벌어졌다. 콜럼버스는 어떤 부족이 자신의 말을 안 듣는다고 1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손목을 다 잘랐다는 얘기도 있다. 황당하게도 이런 콜럼버스를 어린이 위인전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교과서를 통해 이 희대의 대학살 사건을 ‘신대륙의 발견’으로 배웠다. 우리가 스페인 사람도 아닌데. 영미권과 서양으로 유학해 세계사를 공부한 ‘한국인’들이 그들의 뇌에 박힌 시각과 관점을 고스란히 우리나라 교과서에 담아놨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를 통해 전 국민은 그동안 한쪽 눈으로만 세계사를 보게 된 것이다. 우리가 최소한의 인류애적 양심이 있다면 어찌 이 비극적 대학살을 미화하고 콜럼버스를 위인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
국정화, 전 국민의 사상적 노예화
정부가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라는 것은 국민에게 역사에 관해 정부가 정한 한 가지 얘기만 들려주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소한의 양심 찌꺼기라도 남아 있는 학자들이라면 모두가 이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학문을 하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존에 확실하다고 믿었던 ‘사실’들이 실제로는 특정한 세력의 ‘관점’이 투영된 ‘사실의 일면’일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실체적 사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떤 사건에 관계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관점을 입체적이고 총체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특정 세력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역사를 보여주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전 국민의 사상적 노예화이며, 이를 통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간들을 찍어내겠다는 파쇼화에 다름 아니다. 현재의 권력을 통해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고,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을 틀어쥐어 미래를 자신들의 것으로 확보하겠다는 이 무시무시한 시도에 필자는 그저 몸서리가 쳐질 뿐이다. 정말 나쁜 정권이다.
임승수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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