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누구나 '1등의 환희'보다 '2등의 아픔'에 익숙하다.
시상대 위에서 아사다 마오는 울지 않았다. 김연아는 울었다. 아사다는 두 번의 트리플악셀을 성공시켜 205.5점을 얻었다. 자신의 최고 점수다. 그러나 김연아(228.56점)와는 격차가 너무 크다. 아사다 마오는 여자 피겨 역사상 공중에서 3바퀴 반을 도는 트리플악셀을 가장 잘하는 선수다. 그러나 3바퀴 반 돌고 나서, 그다음 2바퀴로 마무리짓는다. 합쳐서 5바퀴 반이다. 그런데 김연아는 공중에서 3바퀴 반을 돌진 못하지만, 3바퀴를 연달아 돈다. 6바퀴다. 링크에 서기 전에 이미 아사다는 0.5바퀴 뒤져 있다. 아사다는 3바퀴를 연달아 돌지 못하기 때문에.
김연아가 65번이나 넘어지면서 똑같은 동작을 연습했다고 했다. 아사다라고 그만큼 넘어지지 않았을까? 그는 일본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래도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라고 말하며, 그제야 울음을 터뜨렸다. ‘2등’은 아무 데서나 울 수도 없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한국의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철저히 무찔러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에 앙갚음했다”고 보도했다. 스무살 소녀들에게 너무 무겁다.
겨울올림픽을 워싱턴에서 NBC로 봤다. 김연아에 대한 환호로 가득 찼지만, 마음 한켠에는 무대 뒤에 내려가서야 울 수 있는 아사다가 아주 조금은 밟혔다. 굳이 영화 <아마데우스>의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대비하지 않더라도, 우린 누구나 ‘1등의 환희’보다 ‘2등의 아픔’에 너무 익숙하니까. 이규혁. 23~24살만 돼도 ‘노장’ 소리를 듣는 스피드스케이팅에 32살 나이에 5번째 올림픽.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는 “안되는 것을 도전하는 게 슬펐다”고 말했다. 우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안다.
급속한 산업화, 군사문화 등은 우리에게 은연중 ‘안되면 되게 하라’ 정신을 주입시켰다. 그러나 잘 ‘되어지지가 않았’고, ‘되게 하려면’ 내 몸을 갈아야 했다. 그리고 ‘되게 하지 못하면’ 나와 남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건 학생(아마추어)이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다. 직장인(프로)에게 최선은 필요없다. 결과를 내놓아야 한다.” 몇년 전 사회부 기동팀장 시절, 수습기자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내뱉은 일갈이다. 의식적이었지만, 참 냉정했고, 참 한겨레스럽지 않았다. 원래 부하는 ‘결과’를, 상사는 ‘과정’을 살펴야 하는 법인데, 우린 늘 거꾸로다. 우리 사회가 이번 올림픽에서 예전처럼 ‘금메달’만 쳐다보지 않고 여러 선수들을 두루두루 축하하고 위로하는 건 그만큼 성숙해진 탓일 게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 소수에 의해 소외당한 다수가 그만큼 많은 탓도 아닐까.
그렇지만 미국과 한국 언론의 메달 집계를 보면, 혹 우리의 그런 모습이 제 딴의 ‘멋내기용’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미국 언론의 메달 집계는 말 그대로 ‘메달’ 개수를 합한다. 반면, 한국 언론은 금-은-동 순이다. 은메달 100개가 금메달 1개를 앞설 수 없다. 미국 신문을 보면, 올림픽 종합순위가 미국(메달 37개)-독일(30개)-캐나다(26개) 순인데, 한국 신문을 보면, 캐나다(금 14개)-독일(금 10개)-미국(금 9개) 순이다. 한국 순위도 한국 언론에선 5위, 미국 언론에선 7위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나라별 순위를 정하지 않으니, 순위 매기기는 어차피 ‘그 나라 맘’이지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아닌 척하기 쉽진 않다. 아사다는 4년 뒤 올림픽에선 4바퀴에 도전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한겨례 201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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