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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자신의 발명품 때문에 목숨을 잃은 발명가들 10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진 발명가들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해 우리 문명의 발전을 이끌어왔지만 간혹 자신이 만든 발명품으로 목숨을 잃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아래에서는 과감한 도전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 편리해지고 윤택해졌지만 정작 발명가 자신은 본인의 발명품 때문에 죽음 맞이한 10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1. 로켓 - 맥스 발리어 Max Valier (1895년 ~ 1930년)

1895년에 태어난 맥스 발리어는 오스트리아의 로켓 과학자이자 당시 가장 유명한 발명가이다. 1930년 1월 25일에 최초로 리퀴드 엔진으로 5분간의 로켓 주행 테스트에 성공한다. 하지만 1930년 4월 19일, 맥스 발리어가 직접 운행하던 알콜을 연료로 한 로켓 차량이 테스트 중 폭발했고, 이 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는 28일 뒤 사망한다.

 

2. 잠수함 - 호레스 로슨 헌리 Horace Lawson Hunley (1823년 ~ 1863년)

선박기관사이자 해양 엔지니어였던 호레스 로슨 헌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최초의 잠수함 '헌리호' 개발에 성공한다. 추진 방식은 7명의 승무원이 손으로 크랭크를 돌려 스크류를 회전시키는 완전한 수동방식이었다. 3번의 시험운행까지 성공하며 자신감을 갖게 된 헌리는 1863년 10월 15일, 7명의 선원과 함께 헌리호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잠수를 시작한 이후 함내에 물이 차기 시작했고 결국 잠수함에 있던 8명 모두 깊은 바다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3. 낙하산 슈트 - 프란츠 라이헬트 Franz Reichelt (1879년 ~ 1912년)

오스트리아 출신 재단사 프란츠 라이헬트는 비행기 조종사가 안전하게 탈출/낙하할 수 있는 슈트를 개발해 '날아다니는 재단사'로 유명해진다. 이후 일반적인 성인 몸무게와 비슷한 75 무게추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친 그는 1912년 2월, 프랑스 정부로부터 에펠탑 57m 지점에서 실험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 자신이 발명한 낙하산 슈트를 직접 착용한 후 과감하게 뛰어내렸으나 낙하산이 절반만 펴지면서 빠른 속도로 지면에 추락, 그 자리에서 사망하게 된다.

 

 

4. 수혈 - 알렉산더 보그다노프 Alexander Bogdanov (1873년 ~ 1928년)

1925년, 소련(현 러시아)의 학자 알렉산더 보그다노프는 '수혈'의 연구를 위한 학회를 창설한다. 그가 최초로 수혈을 시도/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그의 학회는 당시 가설로만 여겨졌던 '수혈'을 의학의 영역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보그다노프는 자기 자신에게 수혈 실험을 하던 도중, 말라리아와 결핵균에 감염되어 1928년 사망한다. 보그다노프는 수혈로 사망했지만 이후 소련에서는 수혈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성공으로 60개 이상의 대형 혈액은행을 설립했고 이 혈액은행들과 수혈기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수많은 부상자들의 생명을 구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현재에 이르러 수혈 기술을 바탕으로 한 장기이식수술은 전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5. 행글라이더 - 오토 릴리엔탈 otto Lilienthal (1848년 ~ 1896년)

오토 릴리엔탈은 새의 비상 관찰을 기초로 하여, 1877년 첫 글라이더를 시험제작, 1891년에는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하여 행글라이더 시대를 개막하게 한 인물이다. 1893년에는 날개 면적 14㎡, 무게 20㎏의 글라이더로 15m의 언덕에서의 비행을 성공한다. 1895년에는 복엽기로 실험을 진행, 1896년 발동기를 가설할 예정이었으나 활공 중 강풍을 만나 추락사하면서 그의 생애는 종지부를 찍게 된다. 그러나 그로 인해 활공비행이 시작되면서 비행기 탄생의 길을 연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 산소마스크 - 헨리 플레우스 Henry Fleuss (1851년 ~ 1933년)

1851년 뉴질랜드 말보로에서 태어난 헨리 플레우스는 다이빙 엔지니어였다. 1878년 그는 산소 가방으로 마스크를 고무호스로 연결해 수중에서도 장시간 호흡이 가능한 '여러 번 숨쉬게 해주는 기계'로 특허를 얻는다. 그러나 5.5m 수심에서 이 기계로 테스트 하던 중 높은 앞력에서 발생하는 독소로 인해 질식해 사망한다.

 

 

7. 인쇄기계 - 윌리엄 불록 William Bullock (1813년 ~ 1867년)

윌리엄 불록은 미국의 발명가로 두루마리 종이를 이용한 '로타리 프린팅' 기술을 도입해 시간당 12,000부를 찍어내면서 인쇄산업의 혁명을 불러온 인물이다. 이후 불록의 인쇄기계는 시간당 30,000부를 찍어낼 정도로 성능이 향상되지만, 1867년 그는 안타깝게도 작동중인 압축기에 다리가 빨려들어가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그로부터 1주일 후 괴사가 진행되던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 도중 사망한다.

 

 

8. 에어로웨건(비행엔진열차) - 발레리안 아바코프스키 Valerian Abakovsky (1895년 ~ 1921년)

1895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발레리안 아바코프스키는 비행기 엔진을 장착한 열차, 에어로웨건 개발로 유명한 발명가이다. 소련군 수송을 목적으로 개발된 에어로웨건은 1921년 7월, 아바코프스키를 포함해 6명의 고위 관료들을 태우고 툴라에서 모스코바로 가던 도중 높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열차가 선로를 이탈하면서 탑승한 고위 관료 6명 전원이 사망하게 된다.

 

 

9. 환자용 견인 침대 - 토머스 미즐리 주니어 Thomas Midgley, Jr. (1889년 ~ 1944년)

토머스 미즐리 주니어는 에틸과 프레온의 발명으로 알려진 미국의 기술자이자 화학자로, 51세에 소아마비 환자가 되어 심각한 장애를 겪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침대에서 편하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밧줄과 도르래로 이루어진 정교한 장치를 고안/개발하게 되는데, 55세 때 실수로 얽힌 장치 밧줄에 목이 졸려 사망하였다.

 

 

10. 방사능 - 마리 퀴리 Marie Curie (1867년 ~ 1934년)

퀴리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마리 퀴리는 프랑스의 물리학자, 화학자로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를 하여 최초의 방사성 원소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다. 이 발견은 방사성 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 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게 되며 이러한 업적으로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1906년 남편의 사망 후에도 홀로 방사성 물질 연구를 계속했던 마리 퀴리는 실험에 따른 방사능 피폭으로 인해 빈혈, 골수암, 백혈병 등을 앓다가 1934년 7월 4일 생을 마감하게 된다.